도시도 수집할 수 있을까?

관광지가 아닌 '진짜 서울'을 수집하는 사람
서울을 수집한다고 하면 무엇을 모으는 걸까요?
남산타워 사진이나 유명한 맛집 목록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수집가 이경민이 모으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오래된 아파트, 사라질 골목, 동네 슈퍼, 시장과 목욕탕.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서울을 몰라서 수집을 시작했다
대구에서 자란 이경민은 취업을 계기로 서울에 왔습니다.
처음 만난 서울은 너무 크고 복잡했습니다. 버스를 잘못 내릴까 긴장했고, 밤이 되면 동네들이 모두 비슷해 보였죠.
그러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는 도시인데, 너무 모르고 있는 것 아닐까?”
처음에는 서울의 관광지를 다니며 후기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유명한 장소는 잘 알면서도 정작 자신이 사는 동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관광지가 아닌 ‘생활 속 서울’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료가 없다면 직접 모으면 된다
그가 처음 기록한 곳은 자신이 살던 신림동과 봉천동이었습니다.
동네의 역사를 찾아보니 행정 자료는 있었지만,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기록이 없다면 내가 만들어보자.”
그는 오래된 건물을 살펴보고, 동네 슈퍼를 찾아가 주민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옛 신문과 위성사진을 확인하며 길과 건물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추적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것은 장소의 정보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장소를 이용했던 사람들의 생활과 기억까지 하나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같은 동네에도 여러 개의 지도가 있다
이경민은 전시에서 관람객들에게 동네 지도를 그려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도로나 건물의 위치를 표시하는 지도는 아니었습니다. 각자가 기억하는 동네의 모습을 자유롭게 그리는 지도였죠.
완성된 결과는 모두 달랐습니다.
누군가는 시장을 크게 그렸고, 누군가는 매일 지나던 골목을 표시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무 의미 없는 장소가 다른 사람에게는 동네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살아도 모두가 같은 풍경을 보는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지도 앱에는 하나의 서울만 나오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저마다 다른 서울이 존재합니다.

왜 ‘기록’이 아니라 ‘수집’일까?
도시를 조사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작업을 ‘기록’이나 ‘아카이빙’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경민은 자신의 활동을 굳이 ‘수집’이라고 부릅니다.
아카이빙은 대상을 분류하고 어떻게 활용할지 계획하지만, 그는 우선 마음에 걸리는 장면과 이야기를 모읍니다. 어디에 사용할지는 나중에 생각합니다.
오래된 아파트를 발견하면 찾아가 보고, 곧 사라질 골목을 만나면 사진을 찍고, 궁금한 이야기가 생기면 주민을 만납니다.
수집가가 우연히 발견한 물건을 간직하듯, 도시에서 발견한 흔적을 하나씩 모으는 것입니다.
사라지는 동네를 계속 바라보다
그가 특히 관심을 두는 곳은 재개발을 앞둔 동네입니다.
낡은 집이 철거되고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 도시가 깨끗하고 편리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이용하던 가게와 시장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관계와 생활 방식도 함께 바뀝니다.
동네마다 달랐던 풍경이 비슷한 아파트 단지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수집은 한 번의 촬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2017년부터 기록한 아현동도 여전히 수집 중입니다. 건물이 바뀐 뒤 주민의 삶과 주변 동네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계속 지켜보기 위해서입니다.
장소를 수집하면 내가 보인다
이경민은 도시를 기록하는 일이 결국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어릴 때 다니던 시장과 만화방, 자주 걷던 골목과 좋아했던 가게를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게 됩니다.
장소를 수집한다는 것은 유명한 곳을 많이 저장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가 자꾸 걷고 싶은 길, 오래 기억하고 싶은 가게, 사라지기 전에 남겨두고 싶은 풍경을 발견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당신의 지도에는 어떤 장소가 가장 크게 그려질까요?
어쩌면 오늘 평범하게 지나친 골목이 당신의 첫 번째 도시 컬렉션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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